봄밤은 감성을 자극하는 계절 중 하나다.
긴 겨울이 물러간 자리에 따스한 바람과 꽃향기가 들어서고, 별빛이 내려앉은 고요한 밤에는 마음 한 켠에 숨겨진 감정들이 조용히 깨어난다. 사랑, 그 이름의 감정은 특히 봄밤과 잘 어울린다. 그래서일까? 이 계절이 되면 많은 시인들이 사랑에 관한 시를 쓰곤 한다.
오늘은 봄밤에 떠오른 사랑, 인간과 인공지능의 시적 대화를 소개해 드릴 예정입니다.
바로 인간 시인과 인공지능GPT이 각각 “봄밤에 떠오른 사랑”이라는 주제로 시를 쓰고, 이를 비교해보는 것이다. 이 비교는 단순한 문학 놀이를 넘어서, 인간의 감성에 인공지능이 얼마나 근접했는지, 그리고 여전히 인간만의 고유한 감정 표현은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시인의 시 vs GPT의 시: 두 작품 소개
먼저 인간 시인이 쓴 시를 살펴보자. 이 시는 실제 신진 시인의 창작 작품이다.
<봄밤> - 시인 이아름
바람이 꽃잎을 몰고 와
창틀 위에 너의 이름을 쓴다
달빛은 흘러가다 내 볼을 스치고
오래전 그날의 너를 꺼내 놓는다
말없이 걷던 그 밤의 골목
손끝에서 피어난 작은 떨림
아직도 가슴 한켠에 머물러
봄밤마다 꿈처럼 되살아난다
이번에는 GPT가 같은 주제로 창작한 시를 보자.
<봄밤의 기억> - GPT
살랑이는 봄바람 속에서
이름 모를 꽃이 피어났지
너를 처음 본 그날처럼
가슴은 조용히 흔들렸어
별빛은 고요히 우리를 덮고
시간은 아주 천천히 흘렀지
너의 눈동자 안에 담긴
봄밤, 그 순간을 나는 기억해
두 시는 모두 봄밤이라는 정서적 배경 위에, 사랑이라는 감정을 섬세하게 담아내고 있다. 시인의 시는 감각적 이미지와 개인적 서사가 강하고, GPT의 시는 구조적 완결성과 부드러운 감성을 강조한다.
감성 전달력과 운율: 인간은 감각, 인공지능은 구조
시를 평가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는 감성의 전달력이다. 독자의 마음을 얼마나 울리느냐, 혹은 공감하게 하느냐는 시의 핵심이 된다.
이아름 시인의 시는 섬세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창틀 위에 너의 이름을 쓴다”라는 표현은 봄바람을 통해 사랑의 기억이 물리적 공간에 침투하는 듯한 이미지로 그려진다. 이어지는 “달빛은 흘러가다 내 볼을 스치고”는 시간과 감정의 흐름을 감각적으로 포착한다. 말없이 걷던 밤, 손끝의 떨림은 사랑의 기억을 섬세하게 불러낸다. 이러한 구체적 묘사와 감각의 조합은 인간만이 경험한 기억과 감정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에 독자의 공감을 유도하기에 유리하다.
반면, GPT가 쓴 시는 보다 일반적인 사랑의 순간을 구조적으로 잘 정리해 보여준다. “살랑이는 봄바람”, “이름 모를 꽃”, “별빛은 고요히 우리를 덮고” 등은 정형화된 시적 표현이지만, 그 안에 부드러운 감성을 담고 있다. GPT 시는 문장 간 운율도 매끄럽고, 의미상의 연결도 자연스럽다. 특히 “너의 눈동자 안에 담긴 / 봄밤, 그 순간”이라는 구절은 인간적인 감성에 가깝다.
운율 면에서 보자면, GPT의 시는 리듬과 운율을 계산적으로 조율한 흔적이 있다. 반복 구조와 4행 연의 규칙성은 안정감을 준다. 반면, 시인의 시는 더 자유롭고 유기적인 흐름을 갖는다. 리듬보다는 감정의 파장에 집중하여, 형식보다는 내용이 독자에게 먼저 다가온다.
참신함과 시적 상상력: 아직은 인간의 손을 들어야 할 때
감성 전달력과 운율에서 GPT는 기대 이상의 결과를 보여줬다. 하지만 시에서 빼놓을 수 없는 또 하나의 핵심 요소는 바로 ‘참신함’과 ‘상상력’이다. 언어를 어떻게 새롭게 배열하고, 기존의 감정을 얼마나 낯설게 표현하느냐는 시의 창조성에 결정적이다.
이 부분에서 시인의 시는 GPT보다 한 수 위다. 예를 들어, “손끝에서 피어난 작은 떨림”은 단순한 접촉을 꽃이 피는 것으로 비유하며 감정의 생동감을 극대화한다. 또 “봄밤마다 꿈처럼 되살아난다”는 구절은 반복되는 기억의 환상을 시적으로 형상화하며 독자에게 새로운 감각을 제공한다.
GPT의 시는 여전히 익숙한 표현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별빛”, “봄바람”, “꽃”과 같은 단어들이 시적 분위기를 잘 조성하긴 하지만, 기존에 많이 사용된 이미지에 의존하고 있어 새로움을 주는 데는 한계가 있다. GPT는 사람의 감정을 모방하는 데 강하지만, 아직은 전혀 새로운 감각이나 비유를 창조하는 데는 미약하다.
또한 GPT는 구체적인 정황보다는 보편적인 장면을 그리기 때문에, 독자가 자신의 구체적인 경험에 대입하기엔 다소 추상적이다. 반대로, 시인의 시는 구체적인 “그날의 골목”이나 “창틀”처럼 기억의 풍경을 정밀하게 설정하여, 독자의 마음 속 경험과 연결되는 지점을 넓힌다.
인간의 감성은 여전히 살아 있다
이번 실험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것은, GPT가 이제는 시를 단순히 흉내내는 수준을 넘어, 일정 수준의 감성과 운율을 갖춘 작품을 창작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GPT의 시는 매끄럽고 부드러우며, 구조적으로 잘 짜여 있어 누구든 공감할 수 있는 감정을 전달한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 시인의 시는 여전히 감각적이고 참신하며, 구체적인 삶의 결을 담고 있어 독자의 가슴을 더 깊이 울릴 수 있다. 언어는 단순한 정보 전달의 도구가 아니라, 감정과 기억을 직조하는 예술의 재료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인공지능이 인간 시인의 상상력을 따라잡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 봄밤에 떠오른 사랑을 가장 아름답게 표현하는 존재는 여전히 사람, 시인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언어 안에서, 자신만의 봄밤을 다시 떠올릴 수 있다.